UI는 픽셀의 조합일 뿐인데, 왜 어떤 화면은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까?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일하다보면 무의식적으로 어떤 UI가 좋은 UI일까 많이 고민하게 돼요.
저는 UI를 다루는 개발자이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어요. 뛰어난 디자이너들과 일하면서 무의식적인 레퍼런스도 많이 쌓을 수 있었고, 단순히 예쁜 화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심상이 사용자에게 전달되어야 하는지도 많이 배웠구요.
그 과정에서 팀 내 인터랙션 세션을 들을 때 가졌던 생각이 있어요.
역시 인터랙션은 애플이 참 잘한다.
거의 원탑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어요.
애플의 인터랙션은 왜 자연스러울까?
제가 애플이 인터랙션을 잘한다고 느끼는 이유는 UI에 실제 세상의 물리법칙을 옮겨두었기 때문이에요.
흔히 쫀득하고 자연스러우며 유려하다고 느끼는 transition 방식으로 spring easing 을 예시로 들어볼 수 있죠. spring easing 이 쫀득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게 실제 세상의 물리법칙을 옮겨둔 효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생각보다 수많은 스프링을 접하며 살아가잖아요.
볼펜의 스프링, 자동차의 서스펜션, 하물며 덩굴식물의 탱글함까지.
애플의 인터랙션과 디자인이 유려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실제 세계를 UI 안에 빼다 박았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UI는 실제 세계가 아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우리가 접하는 UI는 실제 세계가 아니에요.
단순히 픽셀들의 조합일 뿐이죠. 초기 인터넷은 모션은 커녕 화면이 띡 뜨는 것이 끝이었고, 이건 스마트폰 세계에도 통용되는 규칙입니다. 스마트폰의 화면도 결국 픽셀의 덩어리일 뿐이니까요.
기능에만 집중하면 모션은 부수적이고 불필요한 찌꺼기처럼 보일 수 있어요.
UX 조직에서 일하면서도 이런 논의를 정말 많이 봤어요. 서비스 쪽에서는 이런 모션이나 디자인을 넣고 싶은데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있었고, 일정이 촉박해서 모션까지는 못 넣을 것 같다는 말도 있었거든요.
디자이너의 입장도 이해됩니다. 사용자가 느끼는 경험을 더 좋게 만들고 싶을테니까요.
그리고 개발자의 입장은 더더욱 깊이 이해돼요. 기능 구현만으로도 시간이 빠듯한 상황에서 모션과 유려한 디자인은 그저 렌더링을 늦추는 욕심처럼 보일 수도 있거든요. 기능 입장에선 그게 매우 합리적인 주장이기도 하구요.
그럼에도 모션과 디자인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사람 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기능만 따지면 모션도 필요없고 디자인도 필요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건 다들 어렴풋이 알고 있잖아요. 예쁜 디자인을 가진 서비스를 써보면 동일한 동작을 제공하는 다른 서비스보다도 더 사용경험이 좋거든요.
왜일까요?
처음에는 이것이 사회심리학에서 다루는 유사성-매력효과와도 닿아있는 것 아닐까 생각했어요. 사람은 자신과 비슷하거나 익숙하다고 느끼는 대상에 더 쉽게 호감을 느낀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이건 진화심리학에 가까운 설명일지도 모르겠더라구요.
정리하자면, 저는 디자인이 사람이 진화 과정에서 형성한 선호와 경험을 시각적·감각적으로 활용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생각보다 느리게 변한다
저는 기계공학을 전공했어요.
그리고 기계공학이 꽃피우기 시작한 시점은 고작 200년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산업혁명이죠.
산업혁명 이전의 사람은 자연에서 에너지를 빌려서 사용했다면, 증기기관의 산업혁명 이후에는 자연에서 에너지를 원하는 시점에 뽑아내기 시작했어요. 수동적인 존재에서 능동적인 존재로 변화한 것이죠.
현재의 종이라고 할 수 있는 호모사피엔스는 약 30만 년 전에 진화했습니다. 사람이 에너지를 뽑아서 사용하는 능동적인 존재가 되기까지 29만 9800년이 걸린 셈입니다.
그리고 그걸 넘어서 사람의 명령을 듣고 자율적인 판단을 하는 수동적 AI를 상용화하기까진 약 190년이 걸렸고, 그 이후 10년 만에 한 번 명령을 내리면 혼자 문제를 해결해내는 능동적 AI를 상용화하는 단계에 이르렀어요.
우리의 진화속도는 너무나도 느린 반면 기술의 발전속도는 너무나 빠릅니다.
사람은 여전히 불의 색을 따뜻하다고 생각하고, 거대한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나무가 많으면 편안하다고 느껴요. 정작 이젠 불을 사용하지도, 나무에 둘러싸여서 살지도 않는데 말이죠.
CTA 버튼과 빨간색
이런 주장에 대한 조금 빈약한 근거로는 모바일 앱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CTA 버튼과 사람이 빠르게 주목하는 색상인 빨간색을 들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CTA 버튼은 왜 크게 만들까요?
이 질문을 하면 보통은 “중요하니까요” 라고 답할 것 같아요. 여기서도 진화심리학적으로 접근해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큰 것 = 중요한 것 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UI에서 말하는 위계, 즉 Hierarchy 를 이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그리고 빨간색은 왜 정지표시판 색상으로 디자인되었을까요?
빨간색은 위험, 경고, 주의 같은 맥락에서 사람의 주목을 끌기 쉬운 색으로 다뤄져요. 피나 화염처럼 위험을 떠올리게 하는 대상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성질을 역으로 이용해서 주목시키고 싶은 무언가에 빨간색을 쓰곤 합니다.
그래서 좋은 UI란 무엇일까?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단순히 모션도 중요하다, 디자인은 진화심리학에 맞춰야 한다 정도는 아니에요.
조금 더 정확히는, 좋은 UI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여전히 오래된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쪽에 가까워요.
이 차이를 인식하고 있으면 많은 것을 해볼 수 있습니다.
좋은 디자인이 무엇인지, 어떤 것을 개선하면 좋을지, 프로덕트 관점에서 의견을 낼 수도 있죠. 결국 UI는 픽셀의 조합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AI와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요즘, 제가 가져가고 싶은 핵심 키이자 나만의 차별점은 다시 사람 입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의 불완전한 감정과 진화심리학, 그리고 UI 인지심리학에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